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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일보] 이 길에 서서 / 김홍균이 만난 사람 - 이명재 명정보대표
    • 작성일 2018.08.08
    • 작성자아이콘 작성자:명정보기술
    • 조회수 : 293
    • 첨부파일(1) 첨부파일아이콘
    • 하드디스크 데이터 복구의 세계 총사령관은 고졸출신 CEO였다
      학력의 벽을 넘어 꿈과 열정, 기술 하나로 최고의 자리 오른 국민스타
      숙련 기술인이 우대 받는 사회 되어야 국가 발전 성장 가능
      명정보기술 창립 28주년… 중국·베트남 3개 법인 글로벌 기업으로
      말레이시아 정부 사이버 보안시장 진출…28억원 수출 성과

       


       이명재 명정보기술 대표(앞줄 오른쪽)와 말레이시아 사이버보안청 보안관제센터 구축업체 아센시스의 모하메드 시합 대표가 7월 24일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명재 명정보기술 대표(앞줄 오른쪽)와 말레이시아 사이버보안청 보안관제센터 구축업체 아센시스의 모하메드 시합 대표가 
        7월 24일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명재 ㈜명정보기술 대표(62).
      전기불이 없던 시절, 아이 손가락만한 희미한 불꽃으로 어둠을 밝힌 호롱불 밑에서 꿈과 희망을 키워온 소년이 누구도 범접犯接 할 수 없는 탁월한 기술력으로 1등 기업을 일궈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처럼 PC에 문제가 발생하면 찾는 곳이 있다.
      충북 오창과학산업지 내에 위치한 ㈜명정보기술. 국내 데이터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해온 ‘컴퓨터종합병원’이다.
      컴퓨터(PC)데이터 ‘복구復舊’기술로 28년을 한결같이 1등을 지켜왔다. 우월한 기술력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복구의 달인’ ‘디지털 명의名醫’라는 명성名聲을 얻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명정보기술은 국가적 위기 때마다 주목을 받아왔다.
      불가능 하다고 여겼던 대형사건·사고는 물론 기관, 기업, 금융권 등 국내의 중요한 데이터 복구는 명정보기술의 손을 거쳤다.
      천안함은 명정보기술의 데이터 복원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0년 3월 서해 백령도 근처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의혹을 풀 수 있는 단서는 해군의 선내 마지막 활동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 뿐 이었다. 45일간 바다 뻘 속에 묻힌 데다 기름과 염분 등으로 부식이 심해 복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명정보기술이 10일간의 작업 끝에 복구에 성공한 영상 속에는 해군의 마지막 임무수행 모습이 담겨 있었고, 침몰시간도 추정할 수 있었다.
      세월호 내부의 폐쇄회로 화면이 저장된 디지털 영상저장장치(DVR) 복원에도 성공해 굳게 잠긴 세월호의 열쇠를 풀어냈다.
      명정보기술은 1990년 창립 이래 국내 정부 주요 기관과 민간 컴퓨터, CCTV휴대전화 등 모든 저장장치의 손상된 데이터를 복원해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루 평균 100건, 연간 2만건, 누적 건수 50만 건 이상 데이터 복원을 통해 디지털 포렌식 기술력을 쌓아왔으며, 세계 5위권의 복구율(72%)을 기록하고 있다.
      명정보기술은 데이터 저장·복구·삭제 등 모든 데이터 관리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세계 최고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에는 360만개 중소기업과 3800여개 대기업이 있다. 이곳에서 1700만명(중소기업 1400만명 대기업 300만명)의 일자리를 책임진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대내외 정치·경제 상황에 힘겨워하고 있다.
      ‘대형컴퓨터병원’ 명정보기술도 난립하는 ‘중소병원’과 경쟁을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제 복구 하나만 가지고는 먹고 살기 힘들게 됐어요. 데이터 복구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료행위와 같은 것인데 기술도 알려진데다 유사 업체가 많아지면서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병원으로 얘기하면 우리는 서울의 대형종합병원 격이지만, 요즘 웬만한 데이터복구는 동네병원(업체)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죠.”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으로 28년 동안 데이터복구 분야에서 선구적인 입지를 다져온 ‘강소기업’ 명정보기술도 밀려오는 파도를 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요즘 들어 그의 해외 출장 횟수가 부쩍 늘었다.
      오창 명정보기술 본사에서 지난 31일 만난 이 대표는 “말레이시아를 다녀 온 지 3일 됐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를 끝낸 그는 오후 베트남 출장길(31일~8월10일)에 나섰다.

      - 해외 출장이 잦으신것 같습니다.

      “자주 갈일이 많이 생기네요. 하는 일이 IT쪽이다 보니까 해외와 연관이 많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에는 법인이 있고, 기술 수출을 위해 미국과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를 다니고 있습니다.”

      - 말레이시아는 무슨 일로?

      “2006년부터 말레이시아 사이버보안청(CSM)에 기술 수출도 하고 교육을 해왔는데 이번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협력해 CSM 신청사 20층 건물 내 보안관제센터와 디지털 복구 포렌식 센터 구축 사업을 수주했습니다.”

      - 계약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270만달러 인데 정보보호 프로젝트 수출로서는 대규모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CSM 신청사 내 보안관제센터·디지털포랜식랩·클린룸 등 주요 보안시설을 구축하는 것인데 내년 4월 CSM 신청사 준공 일정에 맞춰 완료할 계획입니다.”

      - 해외 사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지 않습니까. 미래를 위한 포석이죠. 해외 15개국 업체와 주로 기술 이전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에는 법인을 설립, 직접 운영하고 있어요. 2009년 중국 소주蘇州 공장을, 2016년 중국 천진공장을, 2017년에는 베트남 호치민시에도 공장을 설립했는데 중국에 치우친 사업영역을 다변화 시키는 목적이지요.”

      - 이번 말레이시아와의 계약으로 동남아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오늘 베트남을 가는 것도 그쪽 정부와 말레이시아와 같은 사이버 정보관련 업무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지요. 앞으로 동남아 많은 국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리라 봅니다. 특히 베트남은 1억 명 가까운 내수시장이 있고, 인근의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총괄하는 본사 전진기지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
      명정보기술 같이 사업 확장을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인건비 부담과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운 환경을 피해 국내를 떠나는 기업이 많다. 지난해 1년간 해외에 공장을 세우거나 설비 증설 등을 한 중소기업은 1884곳으로, 5년 전보다 700여 곳이 늘어났다. 해외 투자 금액은 3배로 늘었고, 국내 투자는 30% 이상 줄면서 일자리도 해외로 빠져나갔다.

      -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는 중소기업이 많은데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하면서 협력업체들은 당연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죠. 또 하나는 코스트가 무척 높아져 있잖아요.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 평균 연봉이 3000만원 대 수준이거든요. 급여뿐만 아니라 운영비용도 크다보니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봐요.”

      - 오창산업과학단지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 오창은 어떻습니까.

      “오창만 해도 3~4년 전과 비교해서 해외 진출업체가 3배 이상 늘아닌 것 같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일이 있어야 일자리도 만들어지는데 지금은 일이 있어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됩니다. 저희가 2003년에 오창에 왔는데 4~5년 전 보다 급여가 2배정도는 늘었습니다. 최근 들어 급여가 30%가까이 오르면서 아마 웬만한 기업들이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심각한 상황이네요.

      “요즘 자영업자분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데 실은 우리 중소기업들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봐요. 자사브랜드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기업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오창의 경우에도 절반이상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인데 대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가면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충북 괴산의 농촌가정에서 5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수재秀才란 말을 듣고 자랐다. 중학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그는 무상교육, 기숙사 제공, 일본 유학의 특전이 있는 국립 금오공고에 진학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금오공고 진학 특전이었던 일본유학이 ‘하사관 임용’으로 바뀌면서 레이더 정비 하사관으로 5년간 첨단기기 수리기술을 익힌 후 1982년 미국계 다국적 반도체장비 회사인 AMK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미국인 회장의 고장 난 컴퓨터를 수리해준 것을 계기로 입사 3년여 만에 기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발탁된 뒤 승진을 거듭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수리 책임자가 됐다.
      AMK가 1990년 국내 공장을 말레이시아로 옮기면서 퇴사하게 됐고, 동료 3명과 함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수리 회사를 차렸다.

      - AMK는 어떻게 입사 하게 됐는지요.

      “제대하고 결혼해서 딸아이가 있었는데 삼성 입사시험에 떨어지고 괴산에 내려가 1년간 고추농사일을 했지만 수익을 신통치 않았어요. 서울 친적이 하는 전기공사업체에서 1년 근무 후 28살에 AMK에 생산직으로 들어갔지요. 당시 대졸초임이 18만원이었지만 저에게는 금오공고, 기술하사관 경력이 무시되고 고졸초임 9만7500원만 인정되더군요. 마그네틱헤드를 만들었는데 직원을 7000명 거느린 최첨단 기업이었습니다.”

      - 회사생활은 어땠습니까.

      “9시부터 6시까지 근무시간인데 잔업을 3시간씩 하면 12만원을 받았어요. 봄에 모 심을 때 한번 바깥나들이 하고 벼 벨 때쯤 들판을 한 번 볼 정도로 회사에서만 지낼 만큼 열심히 했어요. 한국에 온 미국 본사 회장의 고장 난 ‘도시바랩탑’을 고치면서 기술력을 인정을 받아 3년 만에 주임, 대리, 과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죠.”
      -불모지였던 데이터 복구 사업을 어떻게 하게 됐나요.
      “당시 국내 역수출 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고장 나면 미국으로 보내 수리해서 오는 시간만 3개월씩 걸리는 거에요. 수익성이 좋은데다 사업 전망도 밝아 회사에서는 나를 팀장으로 하는 프로젝트 X팀을 구성해 하드디스크 수리를 전담케 했습니다. 그런데 공장이 말레이시아로 이전되면서 팀자체가 없어지게 됐구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면서 당시 맡고 있던 일을 거의 다 가지고 나와서 지금의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3명이 1990년 6월에 ‘C&C테크’ 라는 회사를 만들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수리사업을 했습니다.”

      - 노조의 출현과 인건비 상승으로 청주공장이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됐지만, 전화위복이 된 셈이네요.

      “그렇게 됐네요. 군 제대 후 삼성시험에 떨어졌는데 당시 삼성에 들어갔으면 오늘 명정보기술도 없었겠지요.”

      -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당시 금오공고는 특별한 학교였지 않나요?

      “1973년 1회 입학생이 360명이였는데, 160명 정도가 전교 1등을 한 학생이었어요. 기술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지요. 기자재와 기계를 모두 일본에서 들여와 최신설비를 갖췄는데 레이더를 공부하고 컬러TV, 반도체를 배우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업실습에 흥미를 잃은 저는 바둑과 문학에 빠져 지냈어요. 지금 좋게 생각하면 바둑이 지니는 조화, 승부, 타이밍이 사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위안 삼고 있지요.”

      - IT사업이 아닌 다른 하고 싶은 일은 없나요.

      “기회가 된다면 골프관련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여자골프협회(KLPGA) 정회원으로 프로로 활동한 작은 딸의 영향도 있지만, 시작한지 7개월 만에 싱글을 할 정도로 열심히 했거든요. 시간을 빼앗기는 역기능도 있었지만, 얻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건강을 지킬 수 있었고, 배려와 동반, 도전, 변화에 대응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업과는 조금 다르지만 사내 대학인 ‘명아카데미’를 활성화 시키는 일입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신기술도 지속 가능하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직원은 물론 이 분야에 많은 전문가들은 키우는 일이야 말로 가장 정확한 투자임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두 딸이 있다. 큰 딸 민정 (37)씨는 명정보기술 정책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고, 둘째 명랑(34)씨는 한국여자프로골프선수로 활동했고, 유원대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이제 명정보기술은 충북 청주 오창산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이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고 현대 정보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건강한 기업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그 중심에 ‘이명재’라는 시골 출신이자 고졸 학력의 CEO가 밤낮 없이 뛰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 이명재 대표는…
      ⁎ 1957년 충북 괴산군 문광면 문법리 출생
      ⁎ 1976년 금오공고 전자과 졸업
      ⁎ 1990년 ㈜씨앤씨테크(현 명정보기술)설립
      ⁎ 1993년 국내·아시아 최초 데이터복구 사업 시작
      ⁎ 2003년 오창과학산업단지 공장 이전
      ⁎ 2008년 말레이시아 CSM 데이터복구 기술이전
      ⁎ 2008년 나이지리아 DRSL 데이터복구 기술이전
      ⁎ 2009년 이란 SGI 데이터 복구 기술 이전
      ⁎ 2009년 중국 소주공장 (명정전자) 설립
      ⁎ 2010년 천안함 CCTV 영상 데이터복구 성공
      ⁎ 2014년 세월호 CCTV 영상 데이터복구 성공
      ⁎ 2015년 벤처기업 인증 (기술보증기금)
      ⁎ 2015년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 인증
      ⁎ 2016년 중국 천진공장 설립
      ⁎ 2017년 베트남 호치민시 공장설립
      ⁎ 2011~ 오창 과학 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3대 연임)
      ⁎ 이메일 leemj@myung.co.kr


      ■ 수상
      △ 디지털이노베이션 중소기업청장상
      △ 기능한국인 선정(충북 최초)
      △ 4회 대한민국사이버치안대상 국무총리상
      △ 2012 한국을 빛낸 올해의 무역인상
      △ 우수 숙련기술인 국민스타 선정
      △ 가족친화 우수기업
      △ 2016년 글로벌강소기업


      글 / 김홍균 동양일보 이사·충청의약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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